왜 모닝구무스메가 불러주는 '러브머신' 응원을 들으며 야구치는 자전거 폐달을 밟아야만 하는 것일까. 그 상황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왜 꼭 이런 상황을 연출해야만 했던 것일까.
야구치는 모닝구무스메에서 '탈퇴했다'. 졸업이 아니라 '탈퇴' .
모닝구무스메가 자랑하는 멤버의 졸업과 가입. 여기에서 비껴간, 불명예스러운 '연애' 문제로 인한 탈퇴.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날 이후 해가 넘어갈 때까지 하로프로 안에서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야구치에 관한 언급은 일체 없었다. 한때는 그 침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배신감으로 느껴졌었다. 몇 년을 가족처럼 지냈어도, 공과 사는 다르구나. 이렇게 한 순간 '몰랐던 사람'처럼 대할 수 있구나 싶었다. 탈퇴 후, 조심스럽게 나갔던 한 프로그램에서, 그 땐 그럭저럭 잘 나갔던 '다브르유'와 같이 출연하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그 서먹한 공기가 이유도 알 수 없이 서운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미키가 잡지에서 말했다는 '최근의 가장 화나는 일?'에 대한 '야구치의 탈퇴'라는 짤막한 답변이, 앞뒤 맥락은 둘째치더라도, 그 언급만으로 묘한 연결고리를 느끼게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그랬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결별 발표가 있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방송에 나와서 '원 모무스'라는 닉네임을 공식적으로 다시 부여받았던 때가 말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런 뉘앙스다) 고군분투. 그야말로 고군분투였다. 닥치는 대로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도 하고, 연극도 하고, 뮤지컬도 하고. 방송도 열심히 했다. 로케도 많이 갔다. 먹는 것도 많이 먹었다. 퀴즈도 열심히 풀었다. 일본엔 퀴즈프로그램이 대 인기! 똑똑한 아이돌이 아니라서, 신경질 났을 거다. 맞추는 것도 별로 없고, '내가 바보!'라는 발언도 막 나왔다. 어쩌면 그 바보 캐릭 살리지 못했던 건, 아마도 '슈퍼아이돌그룹 모닝구 무스메의 원 멤버, 전 리더'라는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전의 헥사곤 리뷰 포스팅을 찾아봤다. 자꾸만 틀리는 야구치, 거기서 위축되는 것 처럼 보였던 야구치. 바보캐릭터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자존심. 그 기분 나도 같이 느꼈기에, 퀴즈프로그램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내 바람처럼 야구치가 한 동안 헥사곤에 나오지 않는 동안, 사토다가 대 활약. 바보 캐릭터 만개. 결국 싱글까지 발표한다. 'Pabo'의 메인보컬은 당연히 사토다. 혼자 남은 컨트리무스메 멤버.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건, 어쩌면 야구치와 비슷했다. 그리고 기회는 먼저 사토다에게 갔다. 사실, 사토다가 헥사곤에서 활약할 때, 야구치를 같이 찾아주지 않은 헥사곤에게 서운한 것도 있었다. 나 혼자 느끼는 것이겠지 하면서,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도, 야구치 사정 다 알고, 그걸로 처음엔 소재로 활용하고 잘 했으면서, 왜 그럴까. 야구치가 싫다고 했을까. 지금와서 끼어드는 모양새가 되는 걸까. 솔직히 아쉬운 감정이 있었다.
서운한 감정이 무관심으로까지 이어지려 할 때, 2009년. 헥사곤에 야구치가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완전 대대대대 인기 프로그램이 된 헥사곤. 그 헥사곤의 패밀리. 마땅한 캐릭터가 없어서 불안했지만, 사토다를 비롯 그동안 다른 프로그램 등에서라도 친해진, (야구치도 데뷔 10년이 넘었으니.) 동료들이 많아 안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발표된 야구치마리, 본인 명의의 첫 솔로싱글. 헥사곤으로 부터 발매! 단순히 '첫 솔로 싱글' 이상의 벅차오르는 울컥함이 있었다. 이때까지 이런저런 뒷 사정들이 물밀듯이 생각났다. 아마도 그날 블로그에 코멘트를 달았었던 '야구치의 오랜 팬들'은 다 같이 느꼈으리라. 헥사곤. 잊지 않아주었구나. 야구치 팬들이 생각했던 감정들이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구나. 챙김을 받았다는 생각. 고마웠다. 왜 인지, 이번 세발자전거 12시간 레이스에 야구치가 참가하겠다 했을 때, 그것이 정말로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야구치 식의 답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묵묵히 폐달을 밟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야구치의 동료들, 그리고 후배들이 응원해 줄 수 있다. 그건 당연하다. 응원이 없었어도 서운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전야제'프로그램에서 후배들이 팔찌를 선물해 주었을 때, 연출일지 모른다 하면서도, 그래도 '감동' 받았어- 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레이스 당일. 동료와 후배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러브머신'을 부르며 응원해 주는 장면에는 왠지 모를 불편함이 있었다. 멤버 한명한명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들이 모여있는 그 자체. 그리고 지금은 모두 '하로프로'가 아니지만, 그들의 뒤에 있는 소속사 사무실.
- 그동안 고생했어.
집 나가서 고생한 자식, 이제서야 인정해 주는 듯한 그런 기분. 나만의 과잉해석인가.
솔직히- 야구치가 나왔으니 덩달아 모무스도 26시간테레비에 등장하는 것일테고. 고생하는 야구치 두고, 이미지만 살짝 팔러 나왔구나 싶어서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다. (그런면에 있어서 차라리 남편응원하러 상큼하게 나온 미키티가 더 반가웠던 것)
그리고 굉장히 묘했던 또 다른 마지막 장면. 같이 레이스 했던 쇼지의 부인님. 후지모토 미키가 등장한 것. 솔직히 모무스의 등장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키는 어쩌면 나오지 않았을까- 기대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러브머신'과 따로 등장했다. 키타!!!! 그런데 신기했다. 왜 미키는 원 모무스로 '러브머신'을 같이 부르지 않았을까? 결혼해서 자식도 있는 쯔지는 무대에 같이 올랐는데?! (이것도 사실 사건! 유부녀 최초 '러브머신' 열창!!!) 이날 무대에 오른 모무스OG는 나카자와 유코, 야스다 케이, 요시자와 히토미, 쯔지 노조미, 콘노 아사미, 오가와 마코토. 무대에 설 수 없는 제약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고, 본인이 싫다고 한 거라면. 그것 또한 재미있다. 그만큼 후지모토는 '모닝구무스메'에 대해서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아니면 '아이돌 후지모토 미키'로 보이는게 싫다거나. 역시 미키티란 여자, 강한 여자.
레이스가 끝나고 미키티와 나란히 서 있는 야구치 모습을 보았다. 1기 멤버 뒤에서 언제나 2인자로 있어야 했던 2기 야구치, 그리고 편입멤버라는 애매한 위치의 특이한 6기 미키티. 짧은 리더의 자리 그리고 돌연, 연애 문제로 탈퇴. 한 명은 12시간 동안 폐달을 밟고 땀에 젖어 서 있고, 한 명은 그 동료의 새로운 동료(쇼지)의 부인으로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서 있다. 재미있는 조합이다. 그 아슬아슬함이 나는 좋다. (사실 글 쓰기 전에, 미키티에 대한 생각이 더 많이 있었는데, 도중에 긴 글 쓰면서 잊어버렸다 ㅋ)